김기형 목사 / 시 114:1-8

◎ 본문: 시 114편 1-8절
◎ 제목: 이스라엘의 목자

1. 본문개요 및 관찰
    1) 1-2절: 여호와의 성소와 하나님의 통치권
    2) 3-4절: 바다와 강과 산들과 언덕들의 반응
    3) 5-6절: 바다와 산들아, 왜 물러가고 뛰노는가?
    4) 7-8절: 땅아,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2. 적용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시편 114편에는 ‘출애굽’에 대한 장면을 비유적으로 아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두 개의 기적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홍해를 건넌 사건’이고, 또 다른 하나도 역시 성도님들이 잘 알고 계시는 ‘요단 강’을 건넌 사건입니다. 3절을 보시면 “바다가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니”라고 되어있고, 5절에서도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찌함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찌함인가” 이렇게 비슷한 내용이 두 번에 반복해서 나타나 ‘홍해 사건’과 ‘요단강 사건’ 이 두 가지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홍해를 건넌 사건과 요단강을 건넌 사건’은 출애굽 가운데 매우 중요한 사건들입니다. 먼저 홍해 사건은 이집트의 노예 생활로부터 해방 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에서 첫 번째로 만난 장애물입니다. 그 장애물은 도무지 인간의 방법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였습니다. 앞에는 바다로 막혀 있고 뒤를 돌아보면 이집트의 어마어마한 군대가 그들을 살육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진퇴양난의 상황이고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홍해’라는 장애물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집트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던져 버리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에게 ‘돌아갈 곳’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시키는 장애물이 바로 ‘홍해’였던 셈입니다. 앞에는 바다가 막혀 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려니까 뒤에는 그들을 향해 칼을 겨누는 이집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떠나야 한다. 돌이킬 수 없다.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미련이 있느냐?’라고 말이지요. 이제 이스라엘은 결단해야만 합니다.

    앞으로 그들 앞에 놓이게 될 길은 ‘비단 꽃길’이 아닙니다. 광야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단단히 그의 백성들에게 다짐을 두시는 겁니다. ‘이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 갈 곳은 단 하나 내가 너희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 그곳이다.’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그들은 마음을 정합니다. 그러자 홍해가 열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이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기적인 것처럼 광야의 삶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품고 나아가야 합니다.

    두 번째인 요단강이 갈라지는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이번에는 그들의 뒤에 적이 있지는 않습니다. 홍해를 만났던 이스라엘과는 정반대의 상황입니다. 이제 ‘강을 건너가면’ 그들의 적을 만나게 되는 상황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라면 강을 건너고 싶으시겠습니까? 솔직히 건너기 싫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렇죠! 건너가면 싸워야 하니까요. 건너가면 맞닥뜨려야 하니까요. 그냥 요단 동편에 머물러 정착하면 갈등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 풍족하지는 않지만 만나와 메추라기가 있습니다. 그것으로 계속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요단 강’을 건너라고 합니다. 가나안 족속들과 맞닥뜨리라고 합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제 요단강을 건너게 되면 ‘만나와 메추라기’도 없다고 하십니다. 엄청난 적들과 싸우는 것도 피곤한 일인데, 이제 먹을 양식도 알아서 경작을 해서 먹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홍해와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도전’하기를 원하는 마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뒤에 달려드는 적들을 맞이하느니 차라리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나을 만한 상황으로 그의 백성을 몰고 가셔서는 바다를 갈라버리십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케 하셔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법이 있음을 설명하십니다. 요단강 동편에 머물고 싶습니다. 안주하고 싶습니다. 이곳이 너무나 편안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요단강을 가르는 기적으로 보이시며 ‘내가 친히 가나안 족속과 싸울 것’이라는 약속하시면서 그 전쟁의 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겠다!’고 말했던 베드로를 향해 조용히 아래로 내려가자 말씀하신 예수님처럼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격려하셔서 하나님의 기적을 보여주시며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 ‘고통 가운데 이겨낼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얻게 됩니까? 바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친히 우리 가운데 역사하셔서 도무지 우리가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상황과 형편을 만지시고 우리가 해 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내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이 새벽에 그 놀라운 기적을 기대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앞은 가로막혀 있고 뒤에서 덤벼드는 대적들로 가득한 상황에 놓여 있으십니까? 가로막힌 홍해를 가르시고 백성을 구원하실 하나님을 찬양할 때에 그 기적은 나의 것이 됩니다. 저 너머에 가득 쌓여 있는 문제들이 꼴도 보기 싫어서 지금 이 자리에 머물러 있고 싶은 분들이 계십니까? 이 시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도전하고 계십니다. ‘내가 요단강을 가를 테니 너는 마른 땅을 밟고 건너가 저 너머에 있는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말입니다. 그 분의 도전에 찬양과 순종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찬양은 능력이 있습니다. 찬양 가운에 하나님은 임하시고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요단강을 갈라버리십니다. 우리의 찬양받기에 합당한 그 분을 높여드림으로 그 분의 일하심을 우리의 일상에서 경험하고 만나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되시길 주님이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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